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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로운 채움

우울 불안 생각의 전환 관점 바꾸기와 인지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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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불안으로 내면의 심리적인 부분을 편안하게 채우고 싶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식은 날리지를 보고 깊은 울림을 받아 정리해보았습니다. 행운은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고 행복은 노력만이 아닌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수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충분히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들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는 것만큼 소모적인 일이 없다“

 
 
왜 우린 그렇게 갖고 싶은 게 많을까요?
우린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할까요?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하고 화가 많이 날까요?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나만의 삶을 개척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1. 나만의 삶이 없는 '저자권'의 결핍

그런데 나만의 삶이 없다니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나는 맨날 게으름을 피워',  '그 애가 답장이 없네, 내가 싫은가 보다' 와 같은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행복해지려면 좋은 직장을 가져야 돼',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삶이 멋진 삶이야' 등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한 커다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사고할지에 대한 '틀'이지만, 마치 물고기에게 물처럼 당연하게 생각되어 쉽게 인지되지 않습니다.

 

불과 몇 세기 전의 사람들은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귀족의 삶이라며 동경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틀이라는 것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인데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것을 주입 받고 이것이 마치 유일한 옵션인듯 삶을 살아갑니다.

 

세계적인 심리마술사 데런 브라운은 이를 '저자권'의 결핍'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만의 이야기를 쓰는 능력의 부재인 것이죠. 데런 브라운은 이 저자권을 내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 가장 '나'다운 자아

뇌는 사실 여러 부위로 나뉘어 협력하며 일합니다. 이렇듯 분리된 뇌와 정보들의 파편 속에서 '나'를 가장 '나' 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역할은 바로 DMN(Default Mode Network/ 내측전전두피질+후측대상피질+하두정소엽+외측측두피질+배내측전전두피질+해마형성체)이라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고를 이어서 우리의 '자아정체성'을 유지시켜줍니다.

 

3. 자아, 그 이야기 속에 사는 우리

뇌는 내, 외부의 세계를 설명해주는 수억, 수조의 각기 다른 보고서들을 매초마다 처리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 보고서들을 필터링하는 빠르고 효율적인 알고리즘 같은 것이 없으면 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겁니다. 
 
 DMN이 만드는 '자아정체성'이자 '이야기'가 바로 그 알고리즘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영화들 조차 어느정도 현실을 각색한 버전을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오랜 옛날부터 많은 학자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현실 저 너머에 불변의 진실이 있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세상 만물이 4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더 이상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와 신이 이 삶의 모든 이야기를 대신 써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신의 섭리에 따라 살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삶의 의미에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됐지만,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삶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가 상당히 뿌리를 두고 있는 고대 그리스에는 심지어 현대적 의미의 개인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습니다(개인과 가장 가까운 단어는 '물질(Substance)'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쳐서 종교가 아니라 개인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채워지지 않는 큰 구멍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야기' 였던 것입니다. 
 
 자아가 정해진 이야기에서 해방된 순간 삶의 의미를 잃고 연약한 자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날의 소비주의는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수십 억짜리의 상품 광고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살고, 무엇을 입어야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대신 정해줍니다. 과거에는 종교가 하던 일입니다.

 

광고가 우리에게 이토록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는 광고가 손쉬운 인스턴트 이야기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다양한 인스턴트 이야기 속에서 자유로운 개성을 선택하고 있다는 환상을 느끼지만 사실은 누군가 미리 정해놓은 이야기를 따라갈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스턴트가 으레 그렇듯,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내가 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이야기를 가지는 순간, 내가 가진 이야기는 갑자기 한 물 간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즉 '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2000여년 전 그리스 학자들이 그 방법에 대해 정리해 두었습니다.


4. 스토아 철학의 관점 바꾸기

스토아 철학은 제논이라는 철학자가 창시한 철학으로 스토이즘(Stoicism)은 영어로 '금욕주의'를 뜻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요 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릅니다.
 
 스토이즘의 가장 큰 무기는 관점 바꾸기(Reframing)입니다. 행운이란 무엇일까요? 행운은 실재하는 것일까요? 골프에서 홀인원이 나올 확률은 정말 극악이지만, 골프공이 그 옆의 특정 지점에 떨어질 확률도 역시 똑같이 극악입니다. 그런데 우린 홀인원을 엄청난 행운으로 여기고 평생 기억하겠지만, 홀인원이 아닌 수 많은 골프공들은 무수한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져 가게됩니다. 
 
맞습니다. 행운이란 결국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이야기'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행운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가 가진 이야기에 따라서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스토아 학파였던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외적인 일로 고통 받는다면, 너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너의 판단이며, 즉시 그 판단을 멈춰 고통을 없앨 힘이 네 안에 있다" 
 

우리는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저마다의 해석을 붙여 판단하고 실제 있었던 일보다 중요성이나 심각성을 과장하며 없던 걱정도 만들어내고는 합니다. 똑같은 말도 어쩔 땐 화를 돋우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 때 달라진 것은 단지 나의 판단일 뿐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그 판단을 멈춤으로써 도움을 주긴 커녕 스스로를 갉아먹는 나쁜 감정들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루릴리우스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인상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말라. 누군가 너에게 악담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네가 들은 건 누가 악담을 했다는 것이지, 네가 상처입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첫번째 인상만 따르고 네 안에서 내놓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덧붙이지 마라.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판단을 멈추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통제 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의외로 간단합니다. 통제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생각과 행동, 불가능한 것은 그 외의 모든 것입니다.

 

즉, 스토아 철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마음도 쓰지 말고 고통도 받지 말자는 의미의 금욕주의였던 것입니다. 나를 마비시키는 나쁜 판단은 그만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의미이지 더러운 것을 예쁜 포장지로 대충 싸놓고 만족하자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치 축구선수가 경기를 뛰면서, 경기에서 꼭 승리해야지 하고 생각하기 보다는, 패스를 더 정확히 넣어야지, 슛을 강하게 차야지 하고는 경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승패 자체는 내가 결정하고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인생도 비슷합니다. 인생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경쟁들로 가득합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질 때마다 나의 행복이 흔들리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잃어버린다면? 그리고 그 불행은 사실 내가 스스로 써내려간 신파소설 때문이라면? 영원히 승리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일을 굳이 비틀고 꼬아서 해석하고 그 안에 침전되어 나 자신을 망치기 보다는 인생의 순간 순간을 나를 위한 이야기로 채워 넣을 저자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이나 강박, 중독장애와 같은 병은 우리 뇌에 뿌리내린 부정적인 이야기가 카메라 필터처럼 매일같이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상에서 DMN의 활동을 줄이는, 즉 갖고 있던 이야기를 해체하는 인지 재평가 기법, 마음챙김 명상, 사이키델릭계열 약물치료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단지 이 모든 것이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에서 이미 다뤄졌던 내용이라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 이라는 책에는 세계적인 심리마술사 데런 브라운이 스토아 철학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있습니다.

 

5분 만에 실패하는 방법,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우리가 주변에 끝없이 휘둘리는 이유, 저자권을 남에게 뺏겼을 때 벌어지는 일 등을 담은 책의 흐름대로 이끌려가다보면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대로 산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데런 브라운은 이 모든 문제와 의문들에 스토아 학파의 대답을 들려줌으로써 우리의 진짜 이야기로 빈 공간을 채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들 때 '불행은 결코 우리의 행복을 감소시킬 수 없다'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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